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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세이 리뷰 (귀향이 어려웠던 이유,여성캐릭터,신화영화)

지니즈 2026. 9. 20. 23:25

목차


    10년 전쟁을 끝낸 영웅이 집에 돌아오는 데 또 10년이 걸렸다면, 그게 진짜 모험일까요, 아니면 그냥 재수 없는 사람의 불운일까요? 저는 오디세이아를 처음 제대로 들여다보면서 이 질문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트로이 전쟁의 영웅 오디세우스가 12척의 배로 출발해 홀몸으로 돌아오는 이 서사는, 단순한 모험담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과 판단, 그리고 관계에 대한 꽤 묵직한 이야기입니다.

     

    귀향이 이렇게 오래 걸린 진짜 이유

    오디세우스가 이타카로 돌아오는 데 10년이 걸린 원인을 단순히 "운이 나빴다"고 보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이야기를 들여다볼수록 그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출발부터 이미 조짐이 있었거든요. 첫 기착지 이스마로스에서 키코네스족의 도시를 약탈한 뒤 부하들이 말을 듣지 않아 반격을 당한 사건, 로토파고이(Lotus-Eaters)의 섬에서 정찰병들이 로토스 열매를 먹고 귀향 의지를 잃어버린 사건까지, 초반부터 집단 내부의 통제 문제가 반복됩니다.

    결정적인 실수는 키클롭스 폴리페모스의 동굴에서 터집니다. 부하들은 치즈와 식량만 챙기고 나가자고 했지만, 오디세우스는 동굴 주인이 궁금했습니다. 그 호기심이 화를 불렀죠. 폴리페모스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Poseidon)의 아들이었고, 오디세우스가 탈출 직전에 굳이 자기 이름을 밝히는 바람에 포세이돈의 분노를 정면으로 샀습니다. 포세이돈의 저주, 즉 "집에 절대 못 가게 하거나, 가더라도 동료를 전부 잃고 아주 늦게 가게 해 달라"는 기도는 그대로 실현됩니다.

    그다음은 바람 자루 사건입니다. 바람을 다스리는 왕 아이올로스가 이타카로 가는 순풍만 남기고 나머지 바람을 가죽 자루에 봉인해 선물로 줬는데, 부하들이 자루 안에 금이 들었을 거라 의심해 몰래 열어버립니다. 이타카 해안이 보이는 바로 그 순간에요. 저는 이 장면에서 솔직히 황당함보다 안타까움이 먼저 들었습니다. 이미 도착했다고 생각해 잠깐 눈을 붙인 오디세우스 앞에서 고향이 그대로 멀어지는 장면이 꽤 가슴을 치거든요.

    • 이스마로스: 전쟁 직후 약탈 본능이 부른 첫 번째 손실
    • 폴리페모스: 호기심과 허영심이 포세이돈의 저주를 불러들임
    • 바람 자루: 부하들의 불신과 탐욕이 귀향을 완전히 되돌림
    • 트리나키아: 헬리오스의 소를 먹은 대가로 동료 전원을 잃음
    요약: 오디세우스의 귀향 지연은 운보다 반복된 판단 실수와 내부 통제 실패가 누적된 결과입니다.

     

    여성 캐릭터, 이야기의 조연으로 밀린 건 아닐까

    영화를 보면서 가장 아쉬웠던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었습니다. 오디세우스를 영웅으로 부각하는 데 집중하다 보니, 원전에서 꽤 강한 목소리를 지닌 여성 인물들이 지나치게 배경으로 밀려난 느낌을 받았거든요.

    페넬로페(Penelope)만 해도 그렇습니다. 수십 명의 구혼자들이 왕궁을 점거하고 재산을 축내는 상황에서, 그녀는 시아버지의 수의를 짜겠다는 명목으로 낮에 짠 천을 밤마다 다시 풀어냈습니다. 이른바 '페넬로페의 베짜기'라고 불리는 이 전략으로 3년을 버텼죠. 이건 단순한 기다림이 아니라 적극적인 저항입니다. 그리고 남편이 돌아왔을 때도 바로 믿지 않았어요. 침대 기둥이 살아 있는 올리브 나무라는 비밀을 확인하고 나서야 인정했습니다. 이 장면에서 저는 페넬로페가 감정보다 판단을 앞세우는 인물이라는 걸 다시 느꼈습니다.

    키르케(Circe)는 마법사이자 신화 속 강력한 존재입니다. 여기서 키르케란 오디세우스 일행을 돼지로 변신시킨 마녀이자, 그에게 저승 길과 이후 항로를 상세히 알려준 안내자를 의미합니다. 단순한 악녀가 아니라 이야기 전체의 방향을 결정하는 핵심 인물이죠. 칼립소(Calypso)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칼립소란 오디세우스를 7년 동안 섬에 붙잡아둔 님프인데, 불사(不死)를 제안할 만큼 강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이 두 인물 모두 오디세우스의 여정을 방해하거나 돕는 역할로 단순화된 인상을 받았습니다.

    오디세이아를 주인공 중심으로만 읽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페넬로페와 키르케, 칼립소가 각자 독립적인 서사를 가진 인물들이라고 생각합니다. 호메로스의 원전에서도 이들은 단순한 조연이 아니거든요. 실제로 고전학자들 사이에서도 오디세이아의 여성 인물들을 재조명하는 연구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습니다(출처: JSTOR 고전문학 연구 아카이브).

    요약: 페넬로페, 키르케, 칼립소는 원전에서 강한 주체성을 지닌 인물들이지만, 영화에서는 오디세우스 중심 서사에 종속된 모습으로 그려져 아쉬움이 남습니다.

     

    신화 영화가 살리기 어려운 것들

    개봉 직후 흥행에 오른 영화라 기대가 컸던 게 사실입니다. 많은 사람이 이미 아는 이야기를 어떻게 영상으로 풀어낼지 궁금했거든요. 그런데 제가 직접 영화를 보고 난 뒤 든 생각은, 신화를 영상화할 때 피하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가 있다는 거였습니다.

    호메로스(Homeros)의 오디세이아는 구전 서사시(oral epic)입니다. 구전 서사시란 문자가 아닌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공연된 이야기 형식을 말합니다. 이 형식은 반복과 변주를 통해 청중이 감정을 쌓아가는 구조인데, 영화는 러닝타임이라는 한계 안에서 이 모든 에피소드를 담아야 합니다. 세이렌(Siren), 스킬라(Scylla)와 카리브디스(Charybdis), 저승 방문까지 각각 한 편의 이야기로 풀어도 모자랄 장면들이 빠르게 지나가버리는 경우가 생기죠.

    저는 특히 저승 장면이 아쉬웠습니다. 오디세우스가 죽은 예언자 테이레시아스(Teiresias)에게 귀향 방법을 묻는 이 장면에서, 그는 어머니 안티클레이아와도 만납니다. 전쟁 나갈 때만 해도 살아 계셨던 어머니가 저승에 있다는 사실을 그 자리에서 처음 알게 되는 거죠. 끌어안으려 해도 손이 그대로 통과해버립니다. 이 장면이 지닌 무게감을 제대로 살렸다면 영화 전체의 정서적 깊이가 달라졌을 텐데, 그러지 못한 것 같아 개인적으로는 조금 허전했습니다.

    반면 아르고스 장면은 제가 예상보다 훨씬 강하게 받았습니다. 20년 만에 돌아온 주인을 알아보고, 다가갈 힘도 없이 꼬리만 흔들다 조용히 숨을 거두는 늙은 개. 대사 한 마디 없는 이 장면이 오히려 전체 귀향의 감정을 가장 정직하게 담아냈다고 생각합니다.

    요약: 구전 서사시라는 원작의 특성상 영화로 옮길 때 에피소드의 밀도와 정서적 깊이를 모두 살리기는 구조적으로 어렵습니다.

     

    오디세이아가 지금도 읽히는 이유

    오디세이아를 단순히 먼 옛날 신화로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이 이야기가 지금도 유효한 이유가 따로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서사가 기원전 8세기경에 쓰여진 이후 지금까지 수천 년을 살아남은 건 단순히 모험이 흥미롭기 때문만은 아닐 거예요(출처: Encyclopaedia Britannica, Odyssey 항목).

    제가 이 이야기를 들여다보면서 계속 걸렸던 건 오디세우스의 선택들이었습니다. 키르케의 섬에서 1년을 머물며 연인이 된 것, 칼립소의 섬에서 7년을 보낸 것. 불사의 삶과 아름다운 여신을 포기하고 늙은 아내가 기다리는 이타카로 돌아가겠다는 선택은, 우리나라 6.25 전쟁 당시 지도 하나 없이 낯선 땅에서 고향을 찾아 걷던 사람들의 이야기와 어딘가 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귀향이라는 개념 자체가 지금은 내비게이션 하나로 해결되지만,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그게 얼마나 불확실한 여정이었는지를 생각하면 오디세우스의 10년이 그렇게 낯설지만은 않습니다.

    아킬레우스(Achilles)가 저승에서 한 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죽은 자들의 왕보다 살아 있는 가난한 농부 밑에서 일하는 게 낫다"는 대사는, 영광이나 명예보다 살아 있음 자체가 가장 크다는 메시지입니다. 저는 이 말이 전쟁 서사시 안에서 나온다는 게 꽤 역설적이라고 느꼈습니다. 영웅 서사의 틀을 빌려 영웅주의를 의심하는 이야기인 거죠.

    오디세이아를 단지 모험 이야기로 소비하는 것과, 그 안의 인물들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를 함께 들여다보는 것은 꽤 다른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경험상 이건 한 번 읽고 끝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요약: 오디세이아가 수천 년을 살아남은 건 모험의 스케일보다, 귀향·선택·살아 있음이라는 보편적 주제 때문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오디세우스가 귀향에 10년이나 걸린 가장 큰 이유가 뭔가요?

    A. 표면적으로는 포세이돈의 저주가 원인이지만, 저는 반복된 판단 실수와 내부 통제 실패가 더 근본적인 이유라고 봅니다. 폴리페모스에게 굳이 자기 이름을 밝힌 것, 헬리오스의 소를 먹은 부하들을 막지 못한 것이 결정적 분기점이었습니다. 포세이돈의 분노도 결국 오디세우스 본인이 자초한 셈이죠.

     

    Q. 페넬로페의 베짜기가 뭔가요?

    A. 페넬로페가 구혼자들의 재혼 요구를 피하기 위해 쓴 전략입니다. 시아버지의 수의를 다 짜면 재혼하겠다고 약속해 놓고, 낮에 짠 천을 밤마다 다시 풀어 3년을 버텼습니다. 단순한 기다림이 아니라 적극적인 저항 행위로 볼 수 있습니다.

     

    Q. 세이렌, 스킬라, 카리브디스는 실제 신화에서 어떤 존재인가요?

    A. 세이렌은 노래로 선원을 홀려 암초로 유인하는 존재이고, 스킬라는 절벽 동굴에 숨어 머리 여섯 개로 뱃사람을 낚아채는 괴물입니다. 카리브디스는 바닷물을 통째로 삼켰다 뱉는 거대한 소용돌이 괴물로, 이 셋 모두 항해자가 피해야 할 극단적 위험을 상징합니다. 스킬라와 카리브디스 사이에서 선택해야 하는 장면은 오늘날에도 "최악과 차악 중 선택해야 하는 상황"을 비유할 때 쓰이는 표현이 됐습니다.

     

    Q. 오디세이아 원작과 영화의 차이가 크게 느껴지나요?

    A. 이건 보는 시각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원작의 흐름을 충실히 따른다는 평도 있고, 여성 인물의 비중이 줄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제 경우엔 키르케와 칼립소, 페넬로페가 영화 안에서 오디세우스의 여정에 종속된 느낌을 받아 아쉬웠고, 원전을 직접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론

    오디세이아는 분명 재미있는 이야기입니다. 거인, 마녀, 괴물, 저승까지 모험의 스케일도 크고 주인공의 지략도 볼 만합니다. 다만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오디세우스 한 명의 이야기로만 소비하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페넬로페, 키르케, 칼립소 같은 인물들의 목소리가 조금 더 살아 있었다면 영화 자체의 깊이도 달라졌을 거라고 봅니다.

    관심이 생기셨다면 호메로스의 원전을 직접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영화보다 훨씬 더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거든요. 제 경험상 원전을 읽고 나면 영화가 다르게 보입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ZAmPSYPavQw